일단, 나는 플레이타임 60시간, 진행도 33프로밖에 안된다는 점을 밝히고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내 분노가 금방 희석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제작사의 게임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하고 또 지나가게 될까봐.
개인적으로 건의메일을 쓰고자 하는 가장 큰 계기는 '셀브스의 정약' 퀘스트 때문이다. 하지만 이 퀘스트를 시작으로, 엘든링 여성 캐릭터 빌딩의 허술함에 대해 건의하고싶다.
기존의 프롬 작들에서도 물론 쿠라그, 그위네비어같은 노출이 어느정도 있고 섹스어필 요소가 다분한 캐릭터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들이 존재하는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해서 어느정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게임이 발매 된 시기 자체도 오래되기도 했고.(쿠라그의 디자인 의도는 깨끗한 여성의 신체에 털이 부숭부숭한 거미가 붙어 일어나는 기괴함이 목적이라고 느껴졌고, 그위네비어 또한 크게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개인적이지만.)
하지만 오래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캐릭터는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의 여성 캐릭터들보다도 현실성이 있었다. 온몸을 갑주로 싸매고 있는 암월의 여기사님이라거나, 아버지와 똑같은 양파 갑옷을 입고 나를 맞이한 지클린, 아르토리우스를 추모하러 온 왕의 칼날 키아란... 그런 여성 캐릭터들을 마주할 때 마다 소소한 충격을 받곤 했다. 여성 캐릭터란 그저 모니터 뒤의 남성 플레이어를 만족시키기 위한 용도면 충분하다고 믿는 디자이너들이 많았기에...
스토리에 부합하던 말던, 몬스터에게 찢어 발겨지건 말건 '일단 벗겨놔! 그러면 팔려!' 하는 디자인들만 보다가, 드디어 그 세계에 적합한 옷을 입은 여성들을 마주한 느낌이었달까.
소울- 시리즈의 게임들은 최신작으로 올 수록 내게 더욱 신선한 충격들을 던져주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자기 욕망에 충실한 각각의 심연의 파편들... 온몸을 검은 수의로 싸매고 내게 배신을 제안한 빼짝 마른 유리아.. 자기 기사보다 더 강한 수녀 프리데.. 내 내장을 꺼내간 마리아.. 울고있는 아름다운 아가씨 이브리에타스..
특히 세키로는 엄청났다. 나를 풋내기라 부르는 할머니 보스라니! 늙은 남성형 보스는 꽤 있었지만 할머니 캐릭터 보스는 처음이었기에 또 신선했고, 파계승 또한 낄낄낄 웃으며 커다란 무기를 휘두르는 그 힘에 압도되는 느낌이 좋았다. 여성이어도.. 충분히 성적인 느낌을 배제한 채 멋지고, 무섭게 디자인 될 수 있구나.
그러나 엘든링은 어떤가?
발매 전 인터뷰에서 마케팅 메니저 '키타오 야스히로' 씨는
"과거작에서 플레이어의 레벨업을 돕던 화방녀는 주장도 없고 얌전한 캐릭터였지만 이번에 같은 역할을 하는 캐릭터는 플레이어에게 거래를 제안해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캐릭터이다."
http://gamefocus.co.kr/detail.php?number=126646
라고 얘기했었기에, 나는 이번 작에도 멋진 여성캐릭터의 서사를 기대했다. 게다가 그 대상이 화방녀가 될 지도 모른다니? 새로운 무기를 얻을 때 마다 딜미터기 랍시고 공격도 못하는 무력한 화방녀를 때리고 죽여 공격력을 체크하는 문화를 봐왔기에,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화방녀라는 소식은 나를 들뜨게 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플레이어와 유대를 쌓지 못하고있는 화방녀가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내가 아직 진행을 덜 해서 그런가? 가끔 마리카 교회를 찾을 때에나 나와 대화를 해주고... 굳이 따진다면 멜리나보다는 라니가 나와 가까운 느낌이다. 본인 계획에 내가 따를 것인지를 제안해오기도 하고.
여기서 전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포지션이 어떤지도 살펴보자.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 디아로스의 그녀, 라니아..
전사 네펠리는 셀브스의 정약에 당하는 캐릭터로 나오고 (선택지에 따라 정약을 먹지 않을 수도 있지만.)
피아는 성적인 의미가 다분한.. 포옹을 해주는 캐릭터로 나오고.
셀렌 또한 셀브스의 정약에 당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그나마 로데리카는 자기 길을 찾아 원탁에서 조령의 재능을 꽃피우지만,,, 일종의 '화방녀' 포지션인 무녀 후보생들은 앞을 보지 못하고 어디가서 죽기 일쑤인 포지션으로 과거의 스토리에서 그닥 개편이 되지 못한 느낌으로 나온다.
기대했던 여성형 보스 말레니아도.. 어쩌다 봐버린 스포일러 이미지를 확인했을 때, 굉장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녀가 벗는게 정말... 필요했던 디자인인가?
지금까지 벗지 않고도 충분히 멋진 여성형 보스를 잘 디자인 해 왔는데...?
내가 특히 셀브스 퀘스트에서 화나는점은
너무나 현실의 범죄를 떠오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질 나쁜 남자들끼리 모여서, 저 여자를 약을 먹여서 네것으로 취하라고 속삭이는 것 처럼...
모니터 뒤에 여성 플레이어는 없을 거라 짐작한듯한 텍스트들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한술 더 떠서, 셀렌과 네펠리의 꼭두각시와 침대를 같이 배치해둔것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거기에 굳이 그걸 둘 이유가 있나?
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셀브스는 만족할줄을 모르고 욕망을 키우다가, 라니에게까지 손을 대려고 하는데
솔직히말하면.. 데미 갓이라고는 해도 거의 아이같은 얼굴로 디자인 된 라니에게... 딱 봐도 40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 캐릭터가 성적인 욕망을 가지고 약을 먹이려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나간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범죄를 떠오르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범죄에 즐거운듯이 나를 가담 시키려 하는것이 싫다.. 게다가 녀석은 본체도, 꼭두각시도 내가 직접 죽일수가 없어 더욱 안타깝다.
갑작스럽지만, 캡콤의 내부문서 유출 사건을 기억하는가?
해당 문서에는 '게임의 주인공이나 주요 npc의 성별을 고정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여성을 반드시 보호받는 역할로 만들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주어야 한다. LGBTQ등 소수자들에 대해서도 평범하게 등장시켜야 하며 차별요소를 배제하고 그 자체가 흥미로운 게임이 되게 노력해야 한다.' 고 적혀있다. 이 내부 문서 유출 사건이 일어난것이 20년 11월이다...
프롬 소프트가 마니아층을 위한, 고집과 철학을 가진 게임사라는것은 오랜 플레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엘든링은 출시 3주만에 12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한 세계적 게임이고, 프롬 소프트 또한 더이상 중소 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게임사로서 특정 유저층에게 불쾌감을 주는 스토리텔링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조지 R. R. 마틴까지 기용해가면서 공들인 이야기가 이것인가...? 불편함은 덜 하면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내가 엘든링이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했던것은 여성 캐릭터로 시작하면 남성 앙리가, 남성 캐릭터로 시작하면 여성 앙리가 나오는 게임보다는 더 발전한 무언가 였는데 말이다..
일단은 플레이를 더 해봐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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